NASA

NASA(미국 항공 우주국)

  • 1957년 10월 4일 소비에트 연방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를 성공시킨 것에 의하여 미국의 국민은 자국의 우주 개발 기술이 매우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NASA 프로젝트

  • 머큐리 계획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로 최초의 인공위성을 가져가자 미국은 상상치도 못할 결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머큐리 계획은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미국 항공우주국에 의해 이루어진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탐사 계획이며, 냉전시기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소련보다 먼저 인간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 시작된 계획이다. 하지만 계획과는 다르게 소련의 유인 우주비행을 앞지른 것은 머큐리 계획의 다음 단계인 제미니 계획 후반부터였다. NASA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우주환경에 인간이 처음 도전한다는 것을 감안해, 무인로켓 발사, 동물실험 등을 통해 안정성을 확인해 갔다.


머큐리 계획은 크게 4단계로 계획되었고 무인미션, 유인미션으로 이루어져있다.

  • 1. 우주선 자체의 성능 검증을 위한 시험

  • 2. 우주선 내부의 상태 검증을 위한 시험

  • 3. 탄도비행 미션(일명 머큐리-레드스톤) -햄

  • 4. 궤도비행 미션(일명 머큐리-아틀라스)


1961년 4월에는 소련에서 유리 가가린을 지구 궤도에 올렸다가 생환시키자 위기감을 느낀 NASA는 머큐리 계획을 대폭 수정하여서 초기 계획에 비해 절반으로 축소되었다. 

  • 미션은 우주인당 1번으로 축소한다.

  • 초반 2번의 미션은 탄도비행을 한다.

  • 나머지 5번의 미션은 궤도비행을 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프리덤 7호의 발사 성공 직후인 1961년 5월 15일에 행한 유명한 연설에서, “1960년대가 가기 전에 달에 유인 비행을 실시한다”라고 선언하였다. NASA는 머큐리 계획 도중 미션의 계획과 규모가 아폴로 계획으로 한 번에 가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중간에 제미니 계획을 새로 만들었다. 소련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의 궤도 비행으로 머큐리 계획의 의미가 퇴색된 감이 있고, 소련보다 빨리 달에 간다는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머큐리 계획을 축소하고, 제미니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도입된 제미니 계획은 보여주기식의 의미가 강했던 머큐리 계획에 비해 철저히 실용적인 미션 위주로 구성이 되었다. 


  • 제미니 계획

제미니 계획은 머큐리 계획의 다음 단계이며 우주 공간을 자유로이 비행할 수 있는 우주비행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달에 착륙하여 행동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반적인 기본기술을 개발·습득하는 계획을 가지고있다. 


우주선의 궤도 비행과 회수 기술, 생명 유지 기술의 실용화를 목적으로 한 머큐리 계획에 비해, 달 착륙을 명확한 목표에 둔 우주 개발 계획의 일부인 제미니 계획은 인간이 달에 착륙했다가 귀환하는 아폴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우주 비행 기술을 개발, 습득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2인승 우주선을 이용하고, 한층 더 장기간의 비행이나, 우주 공간에서의 우주선끼리의 도킹이나 분리, 2기의 우주선을 도킹한 채로의 자세 제어 등, 아폴로 계획으로 필요한 기술의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 인간과 기기를 2주간에 이르는 기간의 우주비행에 노출시키는 것.

  • 우주선끼리의 랑데부와 도킹, 도킹 상대의 추진 장치에 의한 자세 제어를 실시하는 것.

  • 대기권 돌입과 미리 선택된 지점에 착수하는 방법의 완성.




 

  • 아폴로 계획
1961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항공우주국에 의해 이루어진 일련의 유인 우주 비행 탐사 계획 머큐리 계획의 목표는 한 명의 우주비행사가 우주선에 탑승하여 지구 궤도 비행을 하는 것이었으나 아폴로 계획은 세명의 우주비행사가 우주선에 탑승하여 달에 착륙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아폴로 계획의 시작은 소련이 인류 최초로 우주로 쏘아보낸 스푸트니크 무인위성에서 시작된다. 적성국이였으나 자국에 비해 여러모로 뒤쳐진 나라라고 여겼던 소련이 제일 먼저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불리는 사회적인 충격을 받았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소련보다 달에 사람을 먼저 착륙시킨 후 귀환시킴으로써 우주 경쟁에서 우위를 가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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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가 제안한 목표와 같이 지구에서 달까지 무사히 왕복하기 위해 아폴로 계획은 여러가지 방안이 제시되었다.


직접 도달: 아폴로 계획은 하나의 우주선으로 달까지 직접 도달하여 착륙한 후, 다시 지구로 귀환하여야 한다. 이러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우 강력한 추진체가 필요하였고 노바 로켓을 사용하게 되었다.

지구 궤도 랑데뷰: 달 착륙에 필요한 착륙선과 같은 부품들을 다수의 로켓을 이용하여 지구 궤도에 올린 후 하나로 조립하여 달로 향하는 방식이 제안되었다.

달 표면 랑데뷰: 먼저 연료를 채운 무인 우주선을 달로 보내고 유인 우주선을 뒤따라 보내 달 착륙을 한 후, 임무를 마치고 무인 우주선의 연료를 사용하여 귀환하는 방식이다.

달 궤도 랑데뷰: 하나의 로켓에 사령선과 착륙선을 모두 실어 이륙한 뒤 지구 궤도에서 달 착륙선과 사령선을 도킹시키고 달로 향한 후, 달 착륙선을 이용하여 달에 착륙한 다음, 임무를 마친 후 달 궤도에서 사령선과 다시 도킹하여 귀환하는 방안이다.

실제 아폴로 계획은 직접 도달과 달 궤도 랑데뷰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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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텍사스 휴스턴의 유인 우주비행 센터는 아폴로 계획의 미션 단계를 다음과 같이 정립하였다.


  • A 미션 : 무인 사령선의 비행 (아폴로 4, 6호)

  • B 미션 : 무인 달 착륙선 테스트 (아폴로 5호)

  • C 미션 : 지구 저궤도에서 유인 사령선 테스트 (아폴로 7호)

  • D 미션 : 지구 저궤도에서 유인 사령선과 달 착륙선 테스트 (아폴로 8호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아폴로 9호가 담당)

  • E 미션 : 지구 중궤도 7400km 상공에서 유인 사령선 및 달 착륙선 지구 궤도 비행 테스트(아폴로 9호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

  • F 미션 : 유인 사령선 및 달 착륙선의 달 궤도 비행 - 달 착륙을 위한 리허설 (아폴로 10호)

  • G 미션 : 달 착륙 (아폴로 11호)

  • H 미션 : 달에서의 정확한 착륙 시도 및 달에서 2일간 체류하며 두 차례의 선외활동 실시(아폴로 12호, 13호(실패), 14호)

  • I 미션 : 기존 미션보다 더 긴 사령선의 달 궤도 비행 및 사령선의 여유 공간을 활용한 추가적인 과학 실험 수행. 실제로는 이후의 J 미션과 통합

  • J 미션 : 기존 달 착륙선보다 더 발전된 달 착륙선을 이용한 3차례의 선외활동 및 월면차를 이용한 임무 수행(아폴로 15호, 16호, 17호)


원래 아폴로 15호는 H 미션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나 아폴로 18호에서 20호까지가 예산 삭감으로 취소되면서 J 미션으로 편입되었다.


아폴로 계획에 따른 임무 수행에는 아폴로 1호부터 18호까지 총 16대의 우주선이 사용되었다. 이 가운데 유인 우주 비행의 성공은 아폴로 7호부터였다.





  • 아폴로 1호

1967년 1월 27일, 아폴로1호 사령선 기체를 테스트하기 위해 우주비행사 3인이 탑승해 있던 중 사령선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사령선의 문을 여닫는 부분의 전선의 피복이 벗겨져서 생긴 스파크였는데, 당시 사령선 내부의 공기는 순수한 산소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스파크는 순식간에 격렬한 화염으로 확산되고 말았다. 우주비행사들은 급히 탈출하려고 했지만 당시 사령선의 해치는 안전 문제 때문에 열리는 데 90초가 걸렸다. 결국 해치가 열리기 전에 3명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선내에 존재하는 여러 가연성 물질들을 불연성 물질로 교체했으며 우주복 역시 나일론 소재에서 유리 섬유 소재로 변경하였다. 또한, 지상실험시에는 순수 산소를 공급하는 대신 산소 60%, 질소 40% 비율의 혼합 기체를 공급하도록 지시했다. 희생자의 유가족인 세 명의 과부들은 남편의 명예를 생각하여 AS-204 미션을 “아폴로 1호"로 명명할 것을 요청했고, NASA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AS-204는 첫 번째 아폴로 미션이 되었다. AS-201과 AS-202는 AS-204가 아폴로1호가 되어 네이밍을 하기엔 시간순서가 맞지 않아 NASA는 아폴로 2호, 3호를 건너뛰고 아폴로 1호 다음의 발사 미션을 아폴로 4호로 명명했다. AS-201과 AS-202는 각각 비공식적으로 아폴로 2호, 3호로 불리고 있다. 


아폴로 1호의 사령관인 거스 그리섬은 머큐리 계획으로 우주인이 되었는데, 착수 직후 우주선 캡슐 해치가 오작동으로 저절로 열려 익사할 뻔했다. 그리섬은 아폴로 1호 사령관이 되고 전에 겪었던 경험 때문에 아폴로 1호의 해치를 쉽게 열리지 않도록 하고 문을 안으로 열리도록 설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부탁으로 인해 해치를 바꾸었고 아폴로 1호가 화재난 난 뒤 이 해치를 열지 못하여 전원 사망하였다.



  • 아폴로 11호

아폴로 11호는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이다. 아폴로 계획의 다섯 번째 유인우주비행인 동시에 세 번째 유인 달 탐사이기도 했다. 1969년 7월 16일에 발사되었으며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탔다. 7월 20일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에 발을 딛은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 당시 콜린스는 달 궤도를 돌고 있었다.


아폴로 11호의 탐사 성공으로, 존 F. 케네디가 주장했던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은 달성되었다.


  • 아폴로 13호 

- NASA 최초 우주비행사 귀한 작전 -

미국은 냉전시대 아폴로 11호와 12호로 연달아 인간을 달에 보내는데 성공하였다. NASA는 이 기세를 몰아 아폴로 13호 발사를 준비한다. 아폴로 13호의 우주 비행사 사령관은 천신만고의 노력끝에 나사의 우주비행사가 된 짐 러벨이다. 우주선 발사일이 찾아오고 아폴로 13호의 발사는 잘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선 첫 단계 분리후 중앙엔진이 끊켜졌다. 러벨은 NASA에게 보고 하였고 관제센터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NASA에서는 나머지 엔진을 더 태우면 프로젝트를 굳이 중단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판단을 내려 비행을 계속하였다. 비행 셋째 날, NASA 관제센터는 우주인들에게 산소탱크를 섞으라고 지시를 하였다. 우주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임무였지만 우주선이 흔들리고 경고음이 들리는 등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러벨은 상황을 파악하는 하는 도중 우주선에서 기체가 새어 나가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NASA 관제센터는 사태의 심각성을  원인을 분석하였다. 산소탱크의 폭발이였다. 이 당시 우주선의 상황은 15분 후 산소가 바닥이 나고 지구에서부터 32만     km나 떨어져있었다. NASA 전문가들은 우주선의 산소 소모를 줄이기 위해 우주인들에게 착륙선 안으로 대피 명령을 지시하였고 NASA 관제센터는 아폴로 13호 귀한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다. 우주선에는 문제가 2가지가 있었다. 귀환에 걸리는 시간은 4일이기 때문에 전력문제가 심각하였다. 폭발 때문에 연료전지를 못 쓰게 되어 전력을 극단적으로 아끼지 않으면 지구까지 절반도 오지 못하기 때문에 전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였고 이로인해 추위가 극심하였다. 또 이산화탄소 문제가 있었다. 원래 두 명이 타도록 설계된 달 착륙선에 세 명의 우주인이 4일이나 타고 가다보니 이산화탄소 정화장치가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NASA는 이 점을 알아냈고 메일박스를 만들어 우주인들에게 제작법을 설명하였고 지상과 우주의 환상적 호흡 덕분에 이산화탄소 문제는 잠시 해결되었다.이 메일박스 사건은 NASA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임기응변이라고도 불린다. 아폴로13호가 지구로 돌아가는 날, 이 날까지도 위험은 함께 있었다. 산소탱크 폭발로 인해 우주선의 열 차폐 코팅에 금이라도 갔다면 공기와의 마찰열 때문에 타죽에 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우주선이 대기권으로 들어왔지만 다행히 이상은 없어었고 무사히 낙하산을 펼쳐 착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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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카이랩 계획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 

출처: NASA


NASA가 발사하고 운영한 최초의 우주 정거장으로서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새턴 V 로켓·새턴 IB 로켓을 이용한 우주 정거장이다. 즉, 미국 최초의 우주 정거장으로, 인간이 체류하는 것으로서는 세계에서 2번째가 된다.지구 궤도를 1973년에서 1979년까지 주회했고, 1973년 ~ 1974년에 걸쳐 3회, 9명의 우주비행사가 체류했다.


현재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정거장은 국제 우주 정거장이 유일하다.


  • 아폴로 - 소유즈 실험 계획

출처: 한국천문연구원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선이 공동 비행한 최초의 우주 계획이다. 1972년 5월에 조인되어 1975년 7월에 시행되었다. 미국에게는 아폴로 우주선을 사용한 마지막 비행이다. 미국의 아폴로18호와 소련의 소유즈 19호 도킹을 하는 프로젝트인데 이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제 합동 우주 프로젝트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진출 경쟁이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양국의 경쟁 관계가 해소되어 인류 발전을 위한 협력 관계로 바뀌게 되고 이후 양국의 우주개발 교류는 후에 있을 여러 프로젝트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역사상 큰 의의를 갖고 있는 우주 미션이다.


NASA 취직방법

  • 신체조건

  • 키: 157.4 ~ 190.5cm

  • 앉은키: 99cm 이하

  • 몸무게: 50~95kg

  • 시력: 좌우 1.0 이상

  • 혈압: 140~90 사이 유지

  • 약물, 알코올, 담배 의존성x

  • 심리적으로 건강함


  • 학력조건

  • 과학, 기술, 공학, 수학 중 1개의 학사학위

  • 해당 분야에서 최소 3년간의 직무경력

  • 제트기 지휘조종사 비행경력 1000시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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